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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11.30 [만물상]'대법원장만 사람이냐'

조선일보   이명진 논설위원                                                                         입력 2018.11.30 03:16

출처 : 조선일보 - [만물상]'대법원장만 사람이냐'


어느 일본 작가가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사과'의 사례를 분류했다. 변명과 반론이 섞인 사과, 얼버무리는 사과, 안이한 배상을 내세우거나 잘못에 대한 처분이 없는 사과…. 엉뚱한 사람에게 하는 '머리 숙이는 방향이 틀린 사과'도 있다. 


▶청와대 직원들의 비위가 잇따르자 며칠 전 비서실장이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사과했다. 비서실장은 "대통령께 면목 없고, 무엇보다 국민에게 죄송한 마음"이라고 했다. 청와대 직원들이 잘못했으면 대통령이 사과를 해야지 왜 사과를 받나. '무엇보다'라고는 했어도 대통령 뒷자리에 국민을 놓은 비서실장의 사과를 국민은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제 행정안전부 장관과 경찰청장이 출근길 화염병 테러를 당한 대법원장에게 사과한 일을 놓고도 뒷말이 적지 않다. 장관과 청장은 테러 바로 다음 날 대법원으로 찾아갔다. 취재진 앞에서 '경호 실패'를 자책하며 연신 90도로 조아렸다. 대법원장이 "법치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이라고 하자, 수사 상황을 보고하고 '가차 없이 대응하겠다'며 재발 방지 대책까지 살뜰히 챙겼다. 사과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경찰이 수수방관하는 가운데 민노총에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폭행당한 기업 임원에 대한 대접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전국에서 법치가 매일 엉망이 되는데 대법원장이 한마디 한 적이 없다. 그러다 자신이 폭력을 당하니 법치 근간이 흔들리는 걸 안 모양이다. 


▶'대법원장만 사람이냐' '힘없는 국민이어서 서글프다'…. 여론이 들끓자 어제 행안부 장관이 국회에 출석해 머리를 숙였다. 그런데 영 개운치가 않다. 장관은 '책임을 느낀다'면서도 "처음 출동한 경찰은 4명이었는데 (폭행 현장에) 접근할 형편이 못 됐다"고 했다. "개별 사건에까지 장관이 개입한다는 오해 때문에 (직접 사과를) 못하고 있지만"이라고 토를 달았다. 변명 섞인 사과, 머리 숙이는 방향이 틀린 사과,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는 사과가 이런 것인가 보다. 


▶정부의 최우선 임무는 국민이 안전하게 일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선 백주 대낮에 민노총이 조폭처럼 폭력을 휘둘러도, 회사 대표 사무실과 관공서를 제집처럼 점령해도, 일용직 노동자 일자리를 빼앗아가도 경찰이 팔짱만 끼고 있다. 기업인들은 '공포감을 느낀다'고 하고 '정권이 민노총 조폭을 비호한다'는 인식까지 퍼지고 있다. 국민을 폭력으로부터 지키지 못하고 그럴 생각도 없는 공권력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

Posted by 바이블 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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